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경에 학교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치며, 의술을 학문의 영역으로 이끌어 낸 인물로서 알려져 있다.
당시 의술은 신비로운 마법처럼 여기던 시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히포크라테스가 인류사에 위인으로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의술을 가르치던 학교를 설립해서가 아니다.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제자들과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편찬한 의학서인 “히포크라테스 전집(Corpus Hippocraticum)”을 후세에 남겼는데, 총 60편으로 구성된 이 의학서에는 지금으로 따지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등의 내용과 각종 질병에 대한 증상, 진단법, 약의 종류, 치료법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조악하거나 비과학적인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고, 또 이후에 수많은 의학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며 변화해 가기 때문에 “히포크라테스의 전집”은 그저 옛 의학을 다룬 고서(古書)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히포크라테스의 업적을 널리 기리는 이유는 이 전집의 첫 장에 수록된 내용에서 환자를 대할 때 의사의 기본자세 와 마음가짐 등 “의술에 대한 윤리“를 정립했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사로서의 윤리는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의대 졸업식에서 의사의 길을 걷게 될 졸업생들이 낭독하는 이 선서문은 1948년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개최된 세계의학협회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문으로 히포크라테스 전집에 수록된 내용을 현대적 문장으로 수정하여 발표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직에 입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약한다.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마땅히 나의 스승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나는 양심과 위엄을 가지고 의료직을 수행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다.
-나는 알게 된 환자의 비밀을 환자가 사망한 이후에라도 누설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의료직의 명예와 위엄 있는 전통을 지킨다. 동료는 나의 형제며, 자매다.
-나는 환자를 위해 내 의무를 다하는 데 있어 나이, 질병, 장애, 교리,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종족, 성적 성향,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나는 위협을 받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그 시작에서부터 최대한 존중하며, 인류를 위한 법칙에 반하여 나의 의학지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약속을 나의 명예를 걸고 자유의지로서 엄숙히 서약한다.
만일, 히포크라테스가 정립한 의사로서의 이러한 윤리의식이 없었더라면 의술은 단지... 사람을 고치는 기술에 지나지 않았거나 또는 그러한 기술을 다루는 기술자로서 의사를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다루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희생과 의무를 감수하며 이를 자랑스럽고 명예라고 여기는 의술을 펼치는 사람.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그 분들을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고개를 숙이고 그 분들의 숭고함에 존경해 마지않는 것이다.
17세기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무도사범인 “야규 무네노리(柳生宗矩)” 역시 단지 권력자의 보디가드 또는 검술의 달인으로만 알려졌겠지만, 그가 남긴 저서인 “병법가전서(兵法家伝書)“를 통해 활인검(活人剣), 검선일치(剣禅一致), 심법(心法), 평상심(平常心) 등 ”마음에 대한 이해“를 중점적으로 다룬 일종의 수신서(修身書)를 저술함으로 싸움의 기술인 검술을 도(道)의 개념으로 승화시켜 현대 검도의 정신적 기반을 만들었다.
그래서 검도에서는 이러한 정신적 기반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운동“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수련“이라고 하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와 “야규 무네노리”가 우리에게 비슷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한낱 기술에 지나지 않는 그것에 의식을 불어 넣어 주어 그 가치를 한 차원 높게 만들었다는데 있다.
의사이던지 사범이던지 그 가치를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람들을 대할 때..
그것이 바로 긍지와 자부심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전염병이 창궐하는 이러한 막중한 사태에 ...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들의 파업을 보고 히포크라테스의 윤리의식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