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 仙 斷 想

바다에서 집으로.. season1 15.07.31 11:45
국선재사범 HIT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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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검도에 관련된 평소의 생각을 나름 피력하는 본 게시판에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게재하는 것에 망설이다 결국 올리게 되었다.

억지스러운 핑계를 들자면, 검도를 지도하고 있는 사범이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고를 갖고 있다거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가지를 지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는 차원으로 해둔다.

지난 2월 일본에서 중고요트로 구입한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까지 입항한 일종의 항해기 이다.

지금이야 웃으며 지난 날을 회상하고 편안히 모니터 앞에 글을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죽을 고비를 두어번 넘긴 그야말로 죽다 살아 왔다..ㅋ

사람이 극한 상황에 마주하고 무사히 넘기면 무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번 항해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음은 항해일지 전문 .................................................


항해일지 1일차 - 2월14일 토요일

토요일 새벽부터 분주하게 집을 나섰다.

나름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했다고 했는데..

주말에다 설연휴를 이틀 앞둔 가운데 해외여행 인파가 정말이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았다.

출국심사 대기에 1시간이나 걸질 정도였다.

항공권 발급받는데도 편도 발권이라 일본 입국이 거절 될 수 있다는데 대한 동의서 받는것도 그렇고..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비행기는 안 놓치고 잘 타고 무사히 일본에 들어 갔다.

편도발권이라 일본입국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변에서 워낙 난리들을 들었는데, 정작 일본출입국관리직원은 여느 때와 상관없이 여권에 도장 꽝! !

12경에 오사카에 도착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이 마중을 나와 편하게 에히메 현의 니이하마 시에 갈 수 있었다.

말이 도시지 거의 시골 어촌이었다.

약 4시간 정도 소요되어 겨우 도착하고 처음 그 배와 마주했다.

다소곳 하게 자태를 보인 RIJEKA(선명)는 마치 수줍게 새 주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착 시간이 땅거미가 어둑하던 때라 사진 조차 못 찍었지만 신부를 맞이하는 새신랑의 기분이랄까..


이전 주인은 지정한 요티였다.

RUJEKA의 이상유무를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은 전 주인이 얼만큼 이 배를 사랑했는지 확인하는 절차나 다름 없었다.

케빈을 열고 실내를 들어 간 순간..

윈치를 감는 핸들을 다소곳이 내려가는 발판에 놓아 둔 것을 본 나는 마치 "리제카를 잘 부탁합니다"라는 이전 주인의 메세지가 느껴졌다.

마치 떠나 보내는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처럼..


이쯤되면..

적당히 타고 놀다가 가격을 두배 정도 붙혀서 한국에 팔아 먹을 당초의 내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여자.. 아니, RIJEKA를 책임져야 하는건가..



RIJEKA의 혈통은 1975년에 미국이 Rod Johnston 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위해 만든 J24라는 요트에 있다.

가정용 요트로 만들어진 J24는 우연히 대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각종 경주용 요트들을 모두 제치고 우승을 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지금까지도 세게ㅖ에서 가장 사랑 받고 있는 요트가 되었다.

RIJEKA는 일본의 닛산 마린에서 J24의 라이센스 방식으로 1992년 제작되어 올해로 23세의 해를 맞고 있다.

RIJEKA 양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일본 야후 경매 사이트를 들여다 보다가 발견했는데 가격도 착하고 상태도 좋아서 일본의 지인에게 대신 구매를 의뢰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나즈막히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대한해협을 함께 건널거야.. 잘 해 보자"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항해 일지 2일차 - 2월 15일 일요일

일요일인데도 역시 일찍 숙소를 나섰다.

예정으로라면 오늘 출항할 예정이었지만, 일본 세관이 휴일에는 휴무이기 때문에 별 수 없이 월요일 세관 신고후 출항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근처 요트 마리나에 가서 RIJEKA 양의 배아래 붙어 있는 따개비등의 부유물을 제거하기로 했다.

이것들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운항을 하게 되면 무거워 빠른 운항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5 마력의 선외기 엔진에도 윤활유를 갈아 주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요트는 세일을 펼쳐 항해를 하지만 보다 빠른 주행을 위해 엔진도 함께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각종 식료품과 운항품을 구입하고 주유소에서 연료를 채워 항해준비를 하는 동안 금새 하루가 지나갔다.




항해일지 3일차 - 2월 16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드디어 오늘 출항이다.

니이하마 시에 위치한 세관에 RIJEKA의 출고심사를 받아야 했다.

요트마리나에서 직접 RIJEKA를 타고 40여분 항해를 하여 세관에 도착하고 몇가지 서류심사를 거쳐 무사히 끝마쳤다.

7M의 작은 배로 대한해협을 건넌다고 하니 세관직원들이 모두 놀랬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해상보안청의 명함을 내게 건네준 친절한 세관 직원도 있었다.

세관 심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옆에 정박하고 있던 어떤 할아버지가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말해주는 것에 대해 모험가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격려와 지지에 감사했다.

정오에 드디어 니이하마 시를 출항했다.

약450km의 장거리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첫 목적지인 伯方島에는 오후5시경 도착하여 약 30km 운항했다.

저녁 식사는 요트 안에서 참치캔과 김치를 반찬으로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졌지만 요트 안의 캐빈에 피어 놓은 간이 난로 덕에 춥지는 않았다.

내일 아침 출항 전에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항해 일지 4일차 - 2월 17일 화요일

화요일 아침 .. 다행히 비가 그쳤다.

간밤에 자면서 빗소리에 몇번 잠이 깨었는지 모른다.

RIJEKA의 상태를 확인하고 근처 주유소에서 연료를 보충했다.

비가 온 다음이라 무척 날씨가 상쾌했다.

아침을 먹고 오전 10시에 출항했다.



요트는 세일을 펴고 바람을 이용하여 운항을 한다.

그러나 바람이 없을 때나 더 빠른 속도를 내기 위해 또는 항구에 안전하게 들어 갈 때 엔진을 사용한다.

RIJEKA 양도 5마력의 엔진이 달려 있다.

혼다 4행정의 선외기로 2톤이나 되는 배를 끌고서 대한해협을 건넌다는 것을 홍보로 한다면 혼다 회사로 부터 협찬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속 10km의 속도로 순항한지 4시간...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더니만 파도가 거칠어 졌다.

3미터나 되는 파도가 RIJEKA를 덥쳤다.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라도 빠지면 그대로 죽는 것이다.

정신이 아찔했다.

파도와 싸우는 방법중 하나는 배의 정면을 이용하여 덮쳐오는 파도를 그대로 가르고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칼로 정면베기 처럼..

이 때 엔진의 힘이 그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5마력의 엔진이 참 잘도 버텨주었다.

3시간여 동안 파도와의 싸움에서 간신히 항구를 찾아 피했다.

죽어다 살아난 기분이 이런 것일게다.

난생 처음으로 이같은 파도와 마주했기에 공포스러움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이런 엄청난 파도도 헤쳐 나왔다는데 대한 자신감이랄까..

정신없이 찾아 헤메다 들어 온 항구는 怒和島 라는 섬인데 약 60km 이동한 셈이 되었다.

다음날의 일기예보를 확인해 보니 오늘보다 바람이 더 강하게 분다는 예상이다.

출항여부를 고민하는 가운데 어두운 밤 밖으로 겨울바다의 칼바람이 불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골아 떨어졌다.




항해 일지 5일차 - 2월 18일 수요일

수요일 아침.. 일본의 지인으로부터 이동 경로를 북쪽 섬 지방의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면 파도의 영향이 적게 받을 것이라는 정보에 따라 출항을 결정했다.

오전8시에 출항했는데, 북쪽 해안선은 다소 돌아 가는 항로이긴 하지만 확실히 몰려드는 강풍의 영향을 덜 받았다.

섬의 해안선들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쪽의 항로는 대형 상선들이 수시로 지나 다닐 정도로 복잡하지만, 항로를 단축할 수 있어 원래 계획은 그 쪽 항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바람의 각도도 좋아 세일을 펼치고 엔진과 함께 빠른 순항을 할 수 있었다.



무사히 목적지인 "가미노세키 섬"에 도착했다.

한적한 어촌이지만 온천이 있다는 주유소 직원의 말에 겨우 찾아 갔지만 수요일은 정기 휴일이라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씻지도 못하고 3일째 노숙자 신세를 벗어 나지 못했다.

금일 이동은 약 50km 정도..




항해 일지 6일차 - 2월 19일 목요일

목요일이 되었다.

원래 목표치의 거리보다 여러가지 변수로 인하여 상당히 못미치는 거리에 있었다.

오늘은 이동 거리를 최대한 늘릴 생각이었다.

적어도 금요일인 내일까지 "시모노세키" 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다음주로 출국수속을 연기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귀국이 늦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무조건 야마구치 현에 위치한 우베 시에 들어가야만 한다.

먼거리를 가야 했기 때문에 일출이 시작된 오전 7시에 출항했다.



일본의 지인이 해수의 흐름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시간을 안내해 주었는데 해수의 흐름을 이용하면 보다 빠른 속도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이러한 해수의 흐름을 조류라고 한다.

유능한 선원이나 선장은 날씨 정보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류를 미리 예측하여 배를 운항하여 보다 빠른 시간에 목적지까지 도착하도록 한다.

일본의 내해에서는 대형상선과의 거리가 불과 100미터 정도 밖에 거리를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운항에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쉬지 않고 운항한지 8시간이 지난 오후3시 ..

갑자기 RIJEKA가 앞으로 가질 못하고 제자리에 선 채로 있다.

엔진도 켜져 있는데도 말이다.

조류의 방향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반대로 바뀐 것이다.

조류가 바뀌리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5마력의 엔진으로는 이러한 역조류를 거슬러 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세일을 펼치려 했지만 파도가 너무 강했다.

조류가 다시 바뀌려면 2시간이 지나야 하기 때문에 그 때까지 그자리에서 조류와 싸워야 했다.

방향이 조금만 틀어져도 조류에 밀리기 때문에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리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견디고 있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엔진 출력이 15 마력 이상은 되어야 바다에서 운항하는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자 거짓말 처럼 조류의 방향이 바뀌었다.



2시간 예상치 못하게 시간을 허비했기에 이번엔 야간 항해를 감행했다.

일본 내해에서 지는 저녁노을은 아름다웠다.

이내 땅거미가 지고 어둠 속에서의 항해는 확실히 위험하기 그지 없었다.

긴장 속에서 약 2시간의 야간 항해를 통해 겨우 예정 목적지였던 "우베" 시에 도착했다.

거대한 상선이 정박되어진 항구의 모퉁이에 RIJEKA를 두었다.

주변의 편의점에서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해서 먹고 내일의 항해 경로를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목적지인 일본의 마지막 관문 "시모노세키" 까지 약 30km..

내일이 금요일이기에 출입국 관리직원이 퇴근하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항해일지 7일차 - 2월 20일 금요일

금요일 아침 7시에 우베시를 떠나서 시모노세키를 향했다.

아침에 뜨는 태양을 배경으로 한 채 약 2시간 후에 시모노세키의 상징인 관문대교가 눈에 보였다.



일본 내해와 대한해협을 이어 주는 좁은 수로인 이곳은 조류의 영향이 대단히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자칫 해류에 떠밀려 난파될 가능성이 커 무척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오전7시에서 오후2시까지 조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우베시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이 시간대에 가는 것은 파도에 서핑을 타 듯이 순항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이 시간대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해 가는 것은 5 마력의 엔진으로는 불가능하다.

관문대교 아래 바다는 마치 지옥으로 가는 바닷길 같은 표현이 어울리듯 곳곳에 크고 작은 소용돌이와 해일이 일었다.

거대한 상선들도 이 조류의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해 최대한 해안에 붙어서 운항할 정도였다.

만일 이 조류에 떠밀려 시모노세키에 들어가야 하는 항구를 놓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해도 끔직했다.

운이 좋았는지 요트 조종실력 때문인지 여하간 무시무시한 조류를 지나 무사히 시모노세키 항에 들어갔다.

다행히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출국수속에 시간적 여유가 있게 되었다.

1주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노숙자 차림으로 시내를 돌아나니는 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음 일정은 출국 수속을 마치고 호텔에서 투숙하여 편안히 휴식을 취한 후 토요일 이른 아침에 시모노세키를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의 지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국의 날씨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게 월요일에 출발하라는 내용이었다.

월요일에 출발을 하게 되면 검도장 운영 및 기타 업무에 많은 지장을 초래할 것이 뻔 했기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발 시점을 고민하는 와중에 다시 연락이 왔다.

금요일 오후6시에 출발을 하게 되면 토요일 오후 늦게 부산 도착이 가능한데 이때는 다소 기상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부산에 도착 직후가 되기에 위험이 덜하다는 의견이었다.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리더의 고충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에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고 이에 따른 책임도 고스란히 짊어 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리더의 자질이 특출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동행한 후배의 안전도 책임을 져야 할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할 위치에 있는 입장이기에 결단은 내려야 했다.

결국 금요일 밤에 출항하기로 결정했다.

휴식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야간 출항을 감행 한 것이다.

체력은 평소의 운동으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꼬박 20 여시간을 키와 시트만을 부여 잡고 파도와 사투를 벌여야 할 입장인지라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대형 상선이 야간에도 지나다니는 길목을 조심스레 운항한지 30여분..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사이렌이 울리며 우리를 라이트로 비추며 달려오는 배가 있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 이었다.

야간 항해등을 켜지 않고 야간 운항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확성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렸다.

이후 해상 견인된 채 처음 있었던 시모노세키 항으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조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벌금이나 기타 처벌은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마도 7m의 작은배로 바다를 건너겠다는 외국인 모험가의 기상을 너그러이 봐 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시모노세키 항에서 호텔이 아닌 RIJEKA의 케빈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라 여기며 잠이 들었다.



항해일지 8일차 - 2월 21일 토요일

토요일 아침을 다시 일본에서 맞이 했다.

어제 해상에서 밤 늦게까지 해상보안청의 조사를 받았지만, 오히려 잠은 잘 잔 것 같다.

어제 조사를 받으면서 이 어설픈 외국인 모험가에게 호의를 보여주며 출항할 때 다시 일본 출입국관리소에 신고하고 출발하도록 안내까지 받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월요일 아침에 출발할 것을 내심 결정하고 있는데, 다시 일본의 지인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토요일 대한해협의 기상상태는 좋지 않지만 바람은 남동풍이라는 것이다.

겨울에 남동풍이라니..?!

일본과 한국은 계절에 따른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데, 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불어 오는 차가운 바람의 북서풍.. 여름에는 태평양에서 불어 오는 남동풍이 영향이 그것이다.

남동풍이라면.. 일본에서 한국으로 갈 때 뒤에서 바람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상당히 빠른 항해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폭우를 동반한 강풍이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빨리 가는지, 아니면 늦지만 안전하게 가는 것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였다.

선장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위험하지만 빠른 쪽을 선택했다.

2월의 남동풍은 흔한 일이 아니기에 이 기회를 이용해 보자는 것이 결정의 이유였다.

항해 첫날 마주친 거대한 파도와의 일전도 헤치고 무사히 빠져 나왔다는 것도 이러한 결정에 한 몫 했다.

출발은 토요일 정오에 개시 했다.

시모노세키의 조류가 바뀌는 오후 2시 이전에 무사히 빠져 나와 대한해협으로 향했다.

흐린 날씨 덕에 배닷물은 회색빛이 되었다.

큰 바다에 나오자 이내 남동풍이 불어 닥쳤다.

메인세일과 집세일을 펼치고 엔진을 최대한 가동했다.

항해 속도가 15 ~ 16 km 가까이 나왔다.




이대로라면 부산까지 220km 거리에서 약 15시간 정도 후면 고국에 돌아 간다.

통상 20여시간이 소요되는데 5~6시간의 단축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후3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해졌다.

RIJEKA에 붙어 있는 나침반의 각도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찥게 깔리자 후미에 램프를 달았다.

전방이 칠흙 같은 어둠으로 마치 눈을 감고 있는 듯 했다.

GPS 수신 상태가 날씨 탓인지 제대로 확인이 어려운 가운데..

오로지 나침반의 각도와 느낌으로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움직임을 느끼며 RIJEKA를 조종했다.

뒤에서 치고 올라 오는 거대한 파도의 각도를 조금이라도 놓치는 순간이면 배의 중심이 무너질 것이 뻔하기에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만일 졸기라고 한다면 그대로 죽음이다.

비는 하염없이 쏟아졌다.

방수복과 비옷을 입고 있어 몸이 젖지는 않았지만, 얼굴과 손에 비와 바다물로 세수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오히려 이러한 상태가 졸음을 쫓는데 도움이 되었다.

몇시간 째 파도와 싸우는 가운데 갑자기 엔진이 멎어 버린다.

뒤에서 니리치는 파도에 엔진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별 수 없이 메인세일만으로 항해를 지속했다.

속도가 약 30~40% 줄었지만 뒷바람 덕분에 항해가 가능했다.

영화에서 가끔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고전하는 모습이 지금 딱 내 모습이었다.

부산까지 약 70km 정도 남았을 때 .. 오렌지 빛을 발광하는 물체가 뒤따라 오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해파리 같은 바다 생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물고기가 아니었다.

아마 일본 해상 자위대에서 운용하는 잠수함으로 추측되었다.

내가 지금 바다에서 죽어도 저 잠수함이 확인은 해 줄 수 있겠구나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부산까지 약 30km 해상까지 그 오렌지 빛의 에스코트를 받았다.

어느새 부산까지 20km 남겨두고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게 되어 주변이 어두워 항구에 입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혹시라도 암초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좌초 또는 침몰이다.

부산까지 약 10km 남긴 현재 시간은 오전 5시..

주변은 폭풍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이른 시간인지 배 한척 보이지 않았다.

메인세일을 거두고 엔진 시동을 시도했다.

천만다행으로 엔진이 작동되었다.

이대로 모든 빛을 동원하여 입항을 시도할지, 아니면 먼동이 트기까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는 중에 RIJEKA의 속도가 0으로 표기 되었다.

조류였다.

부산 앞바다에서 밖으로 뻗어 나오는 조류를 만난 것이다.

별 수 없이 조류와 2시간의 사투를 또 벌여야 했다.

앞으로 나가니는 못하면서 엔진을 최대한 가동시키고 키를 부여 잡는다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조류를 만난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오전 7시가 되어서야 조류의 마법이 풀어졌다.

비 때문인지 평소보다 늦게 먼동이 텃다.

오전 8시에 부산 수영만 요트마리나에 무사히들어 갈 수 있었다.

마리나에 들어가니깐 비가 그쳤다.

일요일 아침.. 마리나의 주변은 무척 평온했다.

역시 노숙자 모양새로 세관 및 입국 신고를 하면서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상이 주는 평범함에 감사함을 느꼈다.

20여시간을 바다에서 폭풍과 사투를 벌이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영광보다 이러한 일상의 모습이 가져다 주는 평온함에 깊은 감동이 전해졌다.

RIJEKA 는 만신창이가 되고 나는 노숙자의 모습으로 일주일을 보냈지만, 고생이라기 보다 모험이 가져다 준 재미와 즐거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이러한 나의 항해 이야기가 ..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감동으로 전해지길 바라면서 항해일지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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